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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슬렘의 영혼들.....
이름: 고독한사냥꾼 * http://www.cyworld.com/saemter


등록일: 2004-07-22 10:05
조회수: 3200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에 반드시 마주쳐야 할 종교는 이슬람교이다. 오랫동안 이슬람교는 전 중동지역에 자생하는 문화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하나의 생활 풍습으로 모슬렘 사람들에게 자리잡아 왔다. 요르단이나 이집트를 여행해 보아도, 고속도로에 트럭을 몰고 가던 운전수가 시간을 맞춰 트럭을 세우고, 고속도로 가장자리에 양탄자를 깔고,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예루살렘의 아랍음식 가게에서도, 화장실 옆에 작은 방을 꾸려놓고 시간이 오면, 정기적으로 메카를 향해 엎드려 기도하는 모슬렘 청년들을 수두룩히 볼 수 있다.

이들은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이 믿는 이슬람의 근본 뿌리에 도사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사탄을 도데체 이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매주 금요일이면 이슬람의 3대 사원인 예루살렘의 황금 오마르 사원에 수천의 이슬람교도들이 모여 알라에게 무릎을 꿇고 코란을 암송하며 머리를 땅에 대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강렬한 종교적 위엄과 어두움의 세력이 확산되는 것을 느껴지곤 한다. 그럴때면, 과연 기독교가 이 엄청난 암흑의 종교 이슬람을 향해 복음의 능력을 비추어, 그들의 마음에 각인된 종교성을 변화 시킬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연결되는 실크로드를, 이제 곧 철길로 여행 할수 있는 날을 바라보고 있다. 서울에서도 중앙 아시아의 평원과 터어키의 수도 앙카라는 물론 요르단의 문턱까지 올수 있는 철길을 타고 여행 할 수 있는 범 아시아의 시대가 예견되고 있다.

우리에게 생소했던 이슬람의 세력은 이제 온 피부로 느낄수 있는 날이 되고, 각종 이슬람의 문화적 양식들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로 유입될 시대가 와서, 이슬람교의 확장 세력이 한반도에게 까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올지도 모른다. 현재 기독교 보다10배 정도의 포교활동의 결과를 얻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일부 선교 단체들이 주도하는 역라마단 운동 같은 것은, 이슬람의 배후에 활동하는 악령에 대한 영적 전쟁이며, 이슬람 세력확장에 대한 정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이슬람 문화권을 과연 어떻게 선교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전 세계의 기독교 선교학자들이 기도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야 할 중차대한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이슬람은 중동의 석유에서 얻어지는 이익금을 가지고, 엄청난 선교투자를 통해 막대한 사람들을 이슬람교도로 개종 시켜가고 있다. 순진한 인류를 암흑의 세상으로 인도하는데 종교인 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코리안들이 모슬렘인을 전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마음밭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발견된다. 첫째 코리안들은 중동인의 마음과 일치 될 수 있는 ‘성품적 공동분모’를 가지고 있다. 우리 속에 있는 민족적 친밀감이 바로 그것이다. 둘째, 이슬람 사람들이 코리안에 대한 우호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랍인들은 서양인과 다른 동양인에 대한 정서적인 일치감을 느낀다.

세번째 코리안은 선교의 열정으로 인한, 인간사랑에 대한 소중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넷째 코리안은 유일하게 중동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내적인 정감’과 따뜻함을 소유하고 있다. 이런 성향들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닐 수 없으며, 이런 마음바탕은 이슬람 교도들의 마음을 담기에 충분하다. 이슬람 선교는 단순간에 그리고 열정과 전략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슬람 선교의 기초는 바로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인간을 먼저 사랑하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습관까지도 포용하며, 이슬람의 삶에 녹아 들어 갈수 있는 신축력이 다. 이슬람에 진정 필요한 것은 교회건물이 아닌, 더불어 나누어 사는 사랑의 교제이다.

한국선교사가 중동선교를 바로 하려면, 먼저 그들과의 관계를 든든히 맺어가는 시간적 여유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닌 문화적, 인종적 언어적 울타리를 먼저 허물고 그들 안으로 잠수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기초공사가 설사 10년 이상이 걸리더라도, 이루어 내야 한다.

이슬람인에게 더욱 효과가 있는 것은 함께 먹고 방문하고 어울려 살아주는 것이다. 이슬람과의 적의 없는 휄로우쉽이 중동선교의 ‘일차 방정식’이 된다는 것이다. 유럽전통의 기독교인에 의해 고난을 받았던 이슬람인들의 역사적 반감을 허물고, 아시아적 친분의 울타리를 세워갈 때, 이슬람선교는 비로서 아름답게 시작 될수 있다. 선교란 총제적 패러다임을 바꾸는 작업이다. 문화인류학과 정치학과 문화학과 지역 역사를 이해하고, 나름대로 잠입할수 있는 터를 찾아 내는 일이 필요하다.

중동인들은 교회의 형식화 예배보다는, 핫다(이슬람인들이 쓰는 천 보자기)를 쓰고 들녁의 지는 해를 바라보며, 양떼와 함께 들풀에 이는 바람에 보리빵을 씹어 왔던 이들 고유의 삶의 내력과 전통에 마추어진 “맞춤선교” 가 이제는 준비되어야 할 시기이다. 이는 교회예전을 도입시키는 획일성의 선교화 보다는, 훨씬 효과적이 될 것이 틀림없다. 중동선교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선교 확장주의, 프로젝트주의, 인력동원주의 일 것이다. 바야흐로 중동선교도 패러다임을 바꿀 시대가 오고 있다. 폭풍이 옷을 벗기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태양이 옷을 벋긴다는 이솝의 패러다임을 생각하자. -이요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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